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반중/국가별 사례/일본 (문단 편집) == 역사 == 현재는 매우 험악한 관계로 보이지만 처음부터 일본이랑 중국이 사이가 나쁜 관계는 아니었다. 고대에 일본은 중국의 문물을 흠모하고 잘 받아들였으며, 그 증거로 [[견당사]]가 여러 차례 [[당나라]]를 방문하고 [[송나라]]도 [[다이라노 기요모리]] 정권과 밀접한 무역을 해왔었다. [[명나라]] 초기에는 일본의 해적질에 분개하여 교류를 전면 중단했지만, 동아시아 최대국인 명나라가 강경한 태도를 취하자 겁을 먹은 [[무로마치 막부]]가 명나라에게 사죄하고 해적들을 처벌함과 동시에 교류 청원을 요청하였고 명나라는 이것을 받아들여 다시 활발한 교류를 했다. 현재에도 일본은 중국의 시장을 결코 무시할 수가 없는데, 중국 시장의 의존도도 높아지고 있고 양국의 경제 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으며, 이 때문에 중국과의 관계 악화를 피하려 하는 경향이 보인다.[* 실제로 현재 일본의 최대 무역 상대국은 중국이다.] 문화적으로도 한국보다도 친밀한 면이 있는데 [[교자]], 부추 볶음을 비롯한 [[중국 요리]]가 일본인들 사이에서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으며 일본에서 유학하는 중국인 유학생도 많다. 일본의 서브 컬처에서도 [[한국인 캐릭터]]는 적어도 [[중국인 캐릭터]]는 예나 지금이나 꽤 보이는 편인데다 [[삼국지]], [[수호전]], [[서유기]], [[중국 신화]], [[중국무술]] 등 중국 문화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니. 중국과 일본의 첫 전쟁은 삼국시대 일본이 [[나당연합군]]에 멸망되어가는 [[백제]]에 원군을 보냄으로 터졌다. 여기서 [[당나라]] 군대가 일본군을 무찔러버리게 되었고, 곧 백제가 결국 멸망하게 된다.([[백강 전투]]) 그리고 [[원나라]]는 [[여몽연합군의 일본원정|여몽연합군으로 일본을 공격]]했는데, 이것은 일본에게 역사상 처음 있었던 외적의 공격이었다. 점령된 지역은 초토화가 되어 일본에서는 모쿠리(몽골)와 고쿠리(고려)가 온다고 하면 어린 아이도 울음을 그친다고 알려질 정도로 [[충격과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이것이 일본이 처음으로 중국을 적으로 보게 된 계기가 되었으며, 중국에 대한 승전에 도취된 나머지 중국에 대한 응징 겸 정복을 위해 고려원정을 준비하려고 하였으나, [[어른의 사정]]으로 인하여 실패했다. 세월이 흘러서 일본은 대륙을 다시 넘보고, [[임진왜란]]을 일으켜서 조선을 정복하고 그 다음 방향을 대륙으로 넘보려고 했었지만, 조명연합군의 활약으로 인해 일본의 꿈은 실패했다. 다시 몇 백 년 세월이 흘러 [[메이지 유신|아시아 최초로 근대화를 달성]]한 후, 중국을 바라봤다. 중국은 근대화를 제대로 하지 못 하여 다른 서구 열강들에게 굴욕을 당하는 중이었다. [[청일전쟁|일본은 그런 중국과 전쟁하여 승리하였다.]] 그리고 1930년대 일본 제국의 목표 중에 중국 대륙의 정복이 있었고, 그로 인해 [[중일전쟁]]이 일본의 침략으로 발생했다. 그러나 광대한 영토와 인구를 가진 중국은 쉽게 무너지지 않았고, 연합국의 멤버가 되어서 일본에 맞서게 되면서 오히려 점점 전쟁이 길어지고 미국과의 태평양 전쟁에서 패색은 일본 측에게 기울다가 결국 일본이 미국에게 패하면서, 중국은 일본의 침략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하지만 2차 대전 이후 냉전 정세에서, 신중국은 [[마오쩌둥]]과 공산정부의 실책([[제사해 운동]], [[문혁]] 등)으로 나라가 혼란에 빠지고 경제도 정체되었으나 일본은 미국을 위시한 [[제1세계]]에 편입되어 착실하게 경제 성장을 하고 국력이 커지고 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